개척약사

 

1970

지역사회 개발에 대한 남다른 의지

 한림공원의 창업자 송봉규(宋奉奎)회장은 1956년 20대의 약관(弱冠)에 제주도 의회 의원 생활을 거치면서 지역사회의 개발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을 뿐 아니라 10여년간의 한림읍 개발 위원장을 지내는 동안 일찍이 제주도의 발전은 관광 산업이 열쇠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관광산업에 대한 상세한 정보와 실태를 조사하기 위하여 1970년 6월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각지의 고적과  관광지를 샅샅이 조사하고 정보를 수집하여 돌아왔다. 이때부터 그는 제주도 내의 적지를 선정하여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개발하고 지역사회의 발전에 일생을 투신할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 보겠다는 굳은 의지를 가지고 그의 고향인 한림읍 내의 적지를 찾아 여러 곳을 탐색하던 끝에 협재, 금릉, 비양도 일대야말로 신비로운 동굴이 있고, 아름다운 해변과 비양도의 낚시터 등 자연 관광 자원이 풍부하여 개발하기에 따라서는 외국의 어떤 유명 관광지에도 뒤떨어지지 않는 자연적 여건이 갖추어져 있다고 판단하였다.

​1971

​개척사업의 착수

 송봉규 회장은 이 지역을 개발하려면 우선 토지를 확보해야 했다. 때마침 협재리에 있는 모래밭을 당시의 소유주인 오현학원에서 팔려고 수차에 걸쳐 경매에 부쳤으나 불모의 땅을 사겠다는 응찰자가 없어 팔리지 않고 있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그는 망설임 없이 부친의 유산을 정리하여 1971년 6월 15일 오현학원으로부터 이 불모의 모래밭을 사들였다. 여러 차례의 경매에도 불구하고 살 사람이 없었던 모래밭이 비로소 새 주인을 맞게 된 것이다.  당시 이 모래밭에는 가시덤불이 얽혀있고 바위와 돌멩이 등이 깔려 있었으며, 곳곳에 무덤이 있는가 하면 북서 계절풍에 날린 모래가 동산을 이루어 사막지대 그대로의 황무지였다. 더구나 한라산 중턱의 황무지를 개간하다가 갖가지 애로에 봉착하여 중도에서 좌절하고 포기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가 불모의 모래밭에 개척사업을 시작하자 가족은 물론 친지들의 만류가 극심했고 주변에서 들려오는 조소 또한 끊이지 않았다. "모래밭을 파서 어쩌자는 것이냐"는 주변 사람들의 비웃음에도 굴하지 않고 그는 드디어 개척의 삽을 뜨기 시작했다. 이미 화살은 시위를 떠났으니 이 ㄸ부터 그의 모든 인생을 건 모험이 시작되었다.

​종합관광개발 계획의 차질

 1971년 송봉규회장은 협재굴·해수욕장·비양도 일대를 하나로 묶는 관광단지를 조성하려는 원대한 구상 아래 5개년 계획으로 「한림지구 종합관광개발계획」을 수립하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관광산업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을 뿐 아니라 투자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있는 것」만을 보여줘서 이삭이나 주워 보자는 것이 관광업계의 실정이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관광개발 계획은 제주도 에서는 초유(初有)의 임해관광단지 조성계획이어서 중앙지에도 일제히 보도되었고, 도 행정당국으로부터도 고무적인 반응을 얻어 자금 지원까지 약속을 받았었다. 이에 송봉규회장은 사업의 출범을 앞두고 만반의 준비를 서두르고 있던 중 첫번째 난관에 부딪치게 되었으니, 행정 당국으로부터 뜻밖의 통첩이 날아 들었다. 「개발계획지구는 사방림지구인데다, 문화재보호법 및 학교보건법과 도시계획법 등의 적용을 받게 되어 개발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한 인간이 마련한 개발계획은 법의 적용이란 큰 암벽에 부딪혀 그 시행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1972

1만평 농장 만들기

 종합관광개발계획이 벽에 부딪히자 새로운 구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가 확보한 토지는 전부 사막지대일뿐 아니라 대부분이 사방림지구였기 때문에 관계법에 저촉되어 개발할 수 없었다. 사방림지구가 아닌 개발 가능한 곳은 불과 33,000㎡뿐 이었으며 그것도 곳곳에 무덤이 있고 암석과 돌멩이들이 깔려 있으며 가시덤불이 얽혀 있는 불모의 황무지였다. 
그는 우선 가시덤불과 바위, 돌멩이 등의 제거작업을 시작하려고 했으나 이에 호응해서 일을 해주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혼자서 호미와 낫을 번갈아 쥐어 가시덩굴을 파헤치다가도 비바람이 치면 비를 피할 나무 한그루가 없었고 북서 계절풍에 의하여 바닷가에서 날아오는 모래는 눈을 뜰 수 없게 하였다. 이러한 외로운 작업을 하던 중 그는 이 불모의 땅을 나무를 심을 수 있는 옥토로 만들자는 구상을 하게 되었다.
 1972년 2월 송봉규회장은 10여명의 인부를 동원해서, 그가 직접 호미와 낫을 들고 지게를 지거나 리어카를 끌면서 모래밭을 덮고 있던 가시덩굴·띠풀·암석·돌멩이를 말끔히 치웠다. 또한 이곳에서 15Km 거리에 있는 한림읍 금악리에서 비옥한 흙 2,000트럭을 운반하여 모래밭에 깔고 나무를 심을 수 있는 농토를 만들었다. 1차 복토 작업이 끝나자 1,000㎡ 단위로 방풍림을 조성하고 가뭄에 대비하여 제주도에선 처음으로 스프링쿨러를 
시설하여 나무를 심을 수 있는 기반을 다져나갔다.

​1972-1975

 농업경영

​ 이 곳 모래밭은 중성인데다 배수와 통풍이 잘 되므로 각종 채소류의 재배도 가능하리라는 착안 아래 마늘, 딸기, 토마토, 참외 등을 재배하여 성공하였고, 소나무 사이에 심은 감귤나무와 복숭아나무에서 알은 굵지 않지만 당도가 높은 열매를 수학하게 되자 유실수 재배에 대한 자신감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송봉규회장에게는 채소 재배가 본래의 목적일 수는 없었다. 언젠가는 종합관광지로 도약하게 될 때를 기다리며 개발계획서를 하나씩 손질해 나갔다.

​1972-1982

 야자수 종자 파종 육묘, 키위후르츠 재배, 느티나무 육묘

 드디어 1972년 4월에 처음으로 소철 종자 1만개를 비롯한 와싱톤야자·카나리아야자·당종려·로베리니 등의 종자를 일본에서 수입하여 파종하였다. 그러나 원래 불모의 땅이었기 때문에 이식한 묘목의 활착(活着)이나 파종한 종자의 발아(發芽)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다. 하루도 거르는 날이 없이 새벽부터 직접 물을 주고 등짐을 지는 등 정성을 기울인 결과 드디어 묘목의 활착과 종자의 발아에 성공하였다. 이와 같이 그의 집착과 피땀 어린 노력은 마침내 누구도 돌아보지 않던 불모의 황무지를 옥토로 탈바꿈 시키는 기적을 실현시켰던 것이다. 

 

 또한 일본에서 키위후르츠 묘목을 수입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재배를 시작하여(1979년) 성공하였다. 한림공원의 키위 재배 성공 현장을 보고 제주도내 농가에 키위 재배가 보급되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그는 제주도에 옛적부터 심어져 도민의 생활에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바닷바람에도 강한 느티나무를 도민에 보급시켜야겠다는 생각도 갖게 되었다. 느티나무 종자는 파종하더라도 발아시킬 수 없다는 것이 당시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그는 식물학자를 찾아 다니며 자문을 얻어 확신이 서자 육지부에서 1만 개의 느티나무 묘목을 구입하여 육묘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리하여 제주도내의 곳곳에 가로수와 조경수로 공급하기도 하였다.

​1973-1982

조경사업의 전개

 1973년 4월에는 장차 휴게소가 들어설 자리와 동굴진입 예정로를 확정지어 그곳에 와싱톤야자·카나리아야자·선인장 등을 심어 아열대식물군을 조성하면서 그는 쉴 때도 꿈 꿀 때도 나무만을 생각하게 되었다. 심지어 문화재보호를 위한 울타리축조·도로보수·관상수 식수 등 치밀한 계획 아래 그는 단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다.

1982

공원 조성 사업의 허가 

 송봉규 회장이 몽매에도 잊지 못하던 관광단지 조성의 기회는 왔다. 즉 1982년 공원법이 개정되어 관청이 아닌 개인도 공원을 조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는 즉시 행정당국에 공원조성사업을 신청하여 1982년 9월 15일 한림도시공원 조성사업의 허가를 받았다. 이제 의욕적으로 관광단지 조성에 심혈을 기울일 수 있게 되었으니 그는 망설임 없이 사재를 털고, 제주은행에서 융자를 받아 하나씩 공원 조성을 진행해 나갔다.

​1981-1983

쌍룡굴과 협재굴의 연결 및 공개

 협재굴·쌍룡굴 지대가 천연기념물 236호로 지정된 후 일반에게 공개한 것은 협재굴 109m 뿐이었다. 그것도 카바이트로 불을 켜서 관람객에게 구경시켰으며, 1981년 9월에야 비로소 동굴내부에 전등을 가설하였다. 1982년 송봉규 회장은 이미 그가 발견하고 탐사한 바 있는 미공개의 동굴을 발굴하여 협재굴과 연결시킴으로써 관람객의 편의를 도모해야하겠다는 생각 아래 매몰된 쌍룡굴의 발굴을 결심하였다. 

 그러나 당국의 허가없이는 발굴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문화재 관리국장의 승인을 받고 동굴내의 모래 제거와 입출구의 정비작업에 착수했다. 그는 헬멧을 쓰고 직원들의 선두에 서서 직접 괭이와 삽을 들고 낙반 등의 위험을 경계하면서 한 발자국씩 모래를 파헤쳐 나갔다. 작업도중 지하의 대석주를 발견하였는데 이 곳은 옛날에 사람의 지혜를 높여주는 지혜의 신이 살고 있었으며 17세기 중엽에 생존했던 월계진좌수(月溪秦座首)도 그 신으로부터 의술을 배워 명의가 되었다는 전설에 의하여 이 석주를 지(智)의 석주(石柱)라 불렀다. 그리고 이 동굴은 동굴내부의 형태가 두마리의 용이 빠져 나온 것 같다고 하여 쌍룡굴이라 이름지었다. 드디어 1983년 3월 전장 400m의 쌍룡굴과 이미 공개중인 협재굴을 연결하여 일반에게 공개하게 되었다.

​1983-1984

​관람객 휴게시설의 신축

공원관람객의 편익을 도모하기 위하여 공원 입구에 쌍용각휴게소(1983년)를 신축하고, 동굴 출구에 송림각휴게소(1984년)를 신축하였다.

​1985

지하수 개발 및 유리온실의 신축

 식물재배를 위한 물 문제 해결을 위하여 지하수를 개발하여 고가수조를 설치(1985년)하고, 아열대식물원 조성에 본격 착수하여 일본에서 수입한 유리온실 자재와 일본기술진의 시공으로 제주도내 최초의 첨단 유리온실(660㎡)을  신축(1985년)하였다.

​1985-1986

공원안내소의 신축 및 주차장 확장포장 

계속하여 공원안내소(1985년)와 야자수식당(1986년)을 신축하고, 주차장 확장 포장(1986년)과 관람객 안내방송시설(1986년)을 완비하였다.

​1987

재암민속마을의 준공

 현대문명의 발전과 더불어 점점 사라져 가는 제주 전통 초가의 보존을 위하여 송봉규 회장은 허물어버리는 초가를 공원안에 이설할 구상을 하고 총 10동, 건평 2백평으로 계획하여 행정당국의 건축승인을 받았다. 낡은 초가를 구좌 평대, 한림, 애월 봉성 등의 농가에서 매입하고 공사를 진행하다 보니 10동중 9동의 건평이 도합 120평으로 나머지 1동은 80평으로 해야만 하게 되었다. 제주도의 실정상 초가집은 보통이 16평 이하이기 때문에 80평짜리 초가집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인지라 군청에 허가 내용을 변경하여 줄 것을 요구했으나 군에서는 애초에 승인된 건축허가사항에 부합되게 하지 않으면 준공검사를 내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난감한 상황에서 당시 총무부장이었던 송상훈 사장의 제안(提案)으로 한국 전력에서 불하(拂下)하는 폐전주를 사다 초가의 대들보와 기둥으로삼아 80평 초가집을 짓기로 하고 공사를 계속 진행하게 되었다. 뜯어버린 고가(古家)를 매입하고 이설하는 데는 나무조각 하나, 돌담 하나 빠짐없이 운반해왔다. 재건축과정에서 낡은 것은 교체해가며 일을 하자니 새 집짓기 보다 오히려 어렵고 공사진척도 또한 느렸으나 끈질긴 노력으로 1987년 12월에 총 10동의 민속촌이 준공되게 되었다.

​1987

아열대식물원 개원 

 1972년부터 야자수 씨앗을 파종하여 15년간 정성들여 가꾸어 온 아열대식물원 조성이 완료되었다. 워싱턴야자원, 카나리엔시스원, 종려원, 제주산야초원, 재래종 감귤원, 키위과수원, 향토의 숲, 관엽식물원, 분재원, 화초원, 선인장원, 열대식물관 등 16개 정원으로 이루어진 식물원에 식물마다 이름표를 만들어 붙이고 드디어 1987년 9월 1일 일반에 공개하게 되었다.

​1988-1991

 

놀이시설 및 실내 석궁장 설치

 공원시설로 결정된 기계식 놀이시설 5종을 제주도내에서는 최초로 신설(1988년)하여 10년간 운영하였다.  그 후 시설물 노후와 이용객 감소로 인하여 1999년도에 철거하고 이후 새가 있는 정원으로 재조성 하였다. 또한 공원시설로 허가된 실내 석궁장도 신축(1991년)하여 2002년도까지 운영하고, 그 후 공원의 개척과정을 소개하는 개척관으로 재단장 하였다.

​1988-1995

​공원시설의 확충

 관람객의 안전과 공원의 경관 개선하기 위하여 전선 지중화 작업(1988년)을 실시하였으며, 한편 증가하는 관람객의 편의 도모와 관람가치 재고를 위하여 문주란휴게소를 신축(1989년)하고, 기사휴게소 신축(1990년), 관리사무소 신축(1990년), 전시관 신축(1991년)등 지속적으로  공원시설을 확충하고 관람시설이 늘어남에 따라 관람로를 신설하고, 관람로 포장 공사(1995년)를 시행하였다.

1996

재암수석관 개관

  1991년도에 신축된 전시관 건물을 회의실로 사용해 오던 중에, 송봉규 회장과 김정심 여사(송봉규 회장 부인:영주수석회 활동)가 평소 소장해 오던 수석들을 한림공원에 기증함에 따라, 외국의 수석과 광석 그리고 화석등을 수집하여 송봉규 회장의 아호(雅號)를 따서 재암수석관(財巖水石館)이라 명명(命名)하고 개관(1996년)하였다.

1997

제주 석·분재원 개원

 아열대 식물원내에 분재 정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해를 거듭할수록 작품의 수도 늘어나고 수폭도 커져 전시 공간이 점점 비좁아질 뿐만 아니라, 분재를 효과적으로 배치하여 관광객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기 위해서는 공간의 확대는 필수였다. 그리고 제주도는 석다(石多)의 고장이므로 명석(名石)을 골라 분재와 함께 전시하면 조화를 이룰 것으로 여겨‘제주 석·분재원’이라 이름짓고 공사를 진행하기 시작하여 분재원터를 결정한 후 소나무 간벌과 전정을 해 주변 정리를 말끔히 마친 후 분재를 진열하게 되었다.  이어서 자연석을 진열하기 위해 각지를 돌아다니며 돌을 수집하던 중 이제는 제주석만이 아니라 세계 각국의 명석을 모아야겠다는 목표로 브라질, 말레이시아, 중국 등 세계 각국의 돌을 구입 전시하여 제주 석·분재원을 1997년 2월에 공개하게 되었다.

1998

왕벚꽃동산 개장

 감귤 과수원으로 관리하여 오던 부지를 제주도 당국의 감귤나무 간벌정책에 협조하여 20년생 온주밀감 성목 300여본을 벌목(1994년)하고, 왕벚꽃동산으로 조성하기 위하여 왕벚꽃나무 5년생 묘목 150본을 식재(1994년)하여 육묘하고, 1998년 3월 제1회 한림공원 봄꽃축제에 맞추어 개장하였다.  

1998-1999

높은온실 신축 및 동굴 관람로 제주석 깔기

 키가 큰 식물을 재배·전시하기 위하여 높은 온실을 신설(1998년)하였고, 우천시 동굴 바닥에 물이 고여 통행에 큰 지장을 초래함에 따라 관람객 통행에 편의를 제공하고, 관람로 이외 지역의 출입을 통제하기 위하여 문화재 관리 당국의 허가를 받아 동굴 관람로 제주석 깔기 작업(1999년)을 하였다.  또한 주차장을 리모델링하여 아스콘 포장(1999년)을 실시하였다.

2000

​새가 있는 정원 개장

 원래는 어린이 놀이 시설이 있었던 곳이었는데, 새가 있는 정원으로 새로 단장하여 2000년 1월에 개장하게 되었다. 놀이시설로 사용하던 시설물을 활용하여 울타리를 치고 그물을 씌워 회전보트가 있던 자리는 원앙새장으로, 모노레일 사이클이 있던 곳은 타조장으로, 관람차가 있던 곳은 꿩과 공작새장으로 변경하였다. 이외에도 백한, 황금계, 앵무새 등 여러 종의 새들을 들여와 새가 있는 정원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매화정원 개장

 감귤 과수원으로 관리하여 오던 부지를 제주도 당국의 감귤나무 간벌정책에 협조하여 20년생 온주밀감 성목 300여본을 벌목(1994년)하고, 왕벚꽃동산 옆에 서귀포에서 구입한 능수매화 60년생 30본과 매화나무 3년생 100본을 식재(1994년)하여 육묘하고, 매화정원을 조성하여 2000년 2월에 첫 개장하였다.  

2000-2002

연못정원 완성

 이 지역은 돌빌레 모래밭 사막지역으로 사막에 오아시스를 만들어서 수생식물원을 조성하기 위하여, 잡초와 가시덩쿨을 걷어내고 여기저기 산재한 무연고 분묘를 이장한 후, 연못공사를 진행하게 되어 2002년 1월에 완성하게 되었다.

 통상적인 연못 공사는 땅을 파내고 바닥에는 콘크리트 타설, 방수 작업 등의 일련된 공사가 필요하겠지만 이 곳에 조성되어 있는 연못은 자연 지형을 최대한 이용하여 천연 암반 위에 있는 모래를 걷어 내고 암반의 갈라진 틈새들을 일일이 손으로 메꿔서 방수작업을 한 후 물을 채워 놓는 방식으로 조성한 자연 친화적인 연못이라 할 수 있다. 연못 공사를 마친 후에는 연꽃, 수련, 어리연꽃, 꽃창포 등의 다양한 습지식물을 수집하여 재배하였고 이러한 결과 다양한 수생 생물들이 서식하는 새로운 자연 생태계가 마련되었다.

2003

​개척관 개관

 한림공원 개척 초기부터 오늘날까지의 개척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한림공원의 연혁과 개척약사를 소개하는 개척관을 개관(2003년)하였다. 개척관에는 한림공원 주요 방문객과 창업인 재암 송봉규 회장 관련 자료도 전시하고 있으며 EBS와 KBS에서 전국 방송된 한림공원의 개척 영상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다. 한편 늘어나는 전력수요를 분산하고 정전시 전력공급을 위하여 자가발전기를 시설(2003년)하였다.

2004-2005

토피어리 정원, 철쭉온실 조성, 관엽온실 개축

 기린, 코키리 등 동물을 소재로 한 야외 토피어리 정원을 신설(2004년)하고 철쭉의 생육환경을 개선하기 위하여 10,000㎡ 규모의 철쭉하우스를 시설(2004년) 하였다. 또한 곰솔광장에는 야외 공연을 할 수 있는 잔디 무대를 조성(2004년)하여 합창제, 관악제 등 공연이 개최되고 있다. 아열대식물원내 노후된 관엽온실을 개축(2005년) 하였다.  그리고 협재리 2514-17외 7필지(50,891㎡)를 매입하여 관리 시설 부지를 확보하였다.

2006

연못폭포 신설, 열대 과수 온실 조성

 2002년도에 조성한 연못정원에 제주 자연석을 쌓아 올려 높이 15m, 너비 25m 의 대형폭포를 신설(2006년)하여 연못정원의 경관을 일신하였다. 또한 아열대식물원 내에 있는 노후한 제주 산야초온실을 철거하고 파파야, 망고, 커피나무 등 다양한 열대과수를 식재(2006년)하여 열대 과수 온실을 조성하였다.

2007-2008

사파리조류원 조성, 선인장온실 신축

 사파리 조류원을 확장하여 공작새, 백한, 호로조, 꿩 등의 새들을 풀어 놓아 자연스럽게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는 사파리 조류원을 조성(2007년) 하였다. 선인장 재배 전시를 확장하기 위하여 아열대식물원내에 선인장온실을 신설(2008년)하였다. 낡고 오래된 동굴 입구 화장실을 최신의 화장실로 개축(2008년)하였다. 2004년도에 매입한 관리 시설 부지(14,880㎡)를 산지 전용 허가를 받고 부지 정리하여 제 2재배장 조성에 착수(2008년)하였다.

2009

수국동산 개장, 파충류 전시장 조성

 제주석분재원 코너에 수국동산을 조성하여 개장(2009년)하였으며, 아열대식물원내에 거북이, 도마뱀, 이구아나 등 열대 지방에서 서식하는 파충류를 도입하여 파충류 전시장을 조성(2009년) 하였다. 또한 쌍용굴 입구에 제주 자연석으로 된 각양각색의 표정이 담겨 있는 두상석 정원을 조성(2009년)하였고, 전시식물 재배 관리를 위하여 제2재배장 하우스(1,100㎡)를 신설하였다.

2010

수선화 정원 확장, 석부작 정원 조성

 매화정원내에 수선화 정원을 확장(2010년)하였으며 제주석 분재원내에 석부작 정원을 새롭게 조성(2010년)하였다.  또한 2007년에 1종 식물박물관으로 지정되어 교육용 전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됨에 따라 교육용 전기 분할 공사(2010년)를 실시하였다.

 

2011

매화분재원, 야외행사장 조성

 제주석분재원을 확장하여 겨울에 꽃을 볼 수 있는 매화 분재를 전시한 매화분재원을 조성하여 개장(2011년)하였고, 야외 공연, 연회, 이벤트 등을 할 수 있는 야외행사장 (1,000㎡)을 신설(2011년)하였다.

​산야초원 개장

 2004년 3월에 착수한 산야초정원(12,000m2) 조성이 완료되어 창업 40주년을 기념하여 2011년 10월 10일에 개장하였다. 산야초정원에는 자생식물 및 산야초 300여종을 도입하였고 생태연못(660㎡)을 조성하였다.

2012

​앵무새 체험학교 개설 및 단풍나무정원 개장

 중국(中國 ) 옥화전(玉禾田)그룹 주평(周平) 회장은 한림공원을 관람한 후 송봉규 회장의 개척정신에 깊은 감명을 받아 ‘물허벅 여인상’을 기증하였다(8월). 청금강, 홍금강 등 희귀 앵무새를 체험할 수 있는 앵무새 체험학교를 개설하였고(10월), 제주석·분재원을 확장하여 단풍나무 정원을 개장하였다(11월). 새로운 볼거리를 만들기 위하여 한림공원 둘레길 조성에 착수하였다(12월).

2013

산야초원 확장부지 통로 개설 및 야외선인장정원 조성

  산야초원 확장부지(25,075㎡, 2012년 매입)에 잡목을 제거하고 작업통로를 개설하였다(4월). 아열대식물원 조경개선 사업으로 기존의 온대수종을 다른 장소로 이식한 후 야외선인장정원을 조성하였다(4월). 신설하는 둘레길에 와싱톤야자수 150그루를 식재하였다(6월). 

2014

수국동산 확장 및 플라워가든 조성

  관람객 통행 편의를 위하여 동굴 입구 관람로를 확장하여 제주석을 깔았으며, 계속 늘어나는 식물에 원활한 공급을 위하여 지하수 물탱크(60톤)를 증설하였다(3월). 수국동산에 200여 그루의 수국을 신규로 식재하였고(4월), 야자수식당 주변 조경개선을 위하여 수목간벌 및 이식을 한 후 왜란을 식재하여 야자수광장을 조성하였다(5월).  꽃축제를 활성화하기 위하여 플라워가든을 조성하고 튤립, 수선화 구근 6만여 구를 식재하였다(11월). 

2015

산야초 전시온실, 야외철쭉원, 열대분재원 개장

산야초원내에 새우란, 풍란 석부작, 희귀 산야초를 전시하는 전시하우스(300 ㎡)를 개장하였다(3월).
또한 제주석분재원 철쭉 온실내에 있던 철쭉 분재와 철쭉 정원수는 새로이 조성한 야외 철쭉원(2,000 ㎡)으로 이식 배치하고(3월), 기존 온실은 열대분재원(1,000㎡)으로 변경하여 부게인빌레아, 하와이무궁화, 고무나무 등의 열대식물 분재를 전시 공개하였다(5월).  

해녀광장 화단 조성 및 시설 개선

해녀 광장에 화단을 새로이 조성하고(4월). 

장작하우스(300㎡)를 제2재배장으로 이설하고 둘레길 선인장 정원을 조성하고(5월), 

사파리조류원 목재통로가 노후하여 관람객 안전을 위하여 
인트로킹으로 포장한 후 주변 조경을 개선하였다(6월).
제2재배장에 재배하우스를 증설(150㎡)하였다(7월). 

빅토리아 수련 재배 성공

수련 가운데 제일 큰 빅토리아 수련 자체 재배에 성공하여, 
2015년 제 14회 한림공원 연꽃축제 기간에 대형 수조 10개를 이용하여 전시하였다 (7월).

2016

​어머니 은혜비 건립

한림공원 창업주 재암 송봉규 선생은 한림공원 조성성공을 위하여 물심양면으로 크게 뒷받침 해주신 
모친 故홍안순(1901 ~ 1987) 여사의 은공을 기리는 시를 직접 쓰시고, 돌에 새기어 은혜비를 건립하였다 (9월).

둘레길 인트로킹 포장(2km)  준공

2012년 12월부터 조성에 착수한 둘레길(폭 5~8 m, 길이 2km) 인트로킹 포장과 1차 둘레길주변 조경사업이 준공되었다 (9월). 

또한 제2재배장 작업통로를 인터로킹 포장(폭 5m, 길이2km) 완료하였다.(8월)

2017

사무동, 복지동, 제조동 신축

사무실, 회의실을 겸비한 사무동(323㎡)과 직원 휴게실, 샤워실, 탈의실, 기숙사가 있는 복지동 (452㎡) 및 제조시설과 비품을 보관하는 제조동(340㎡)을 신축준공 하였다.(9월)

트로피칼 둘레길 관람차 운행

선인장, 야자수등 이국적인 열대식물들이 식재되어 있는 둘레길을 설명을 들으며 관람할 수 있는 관람차(23인승)를 도입하여 운행을 시작하였다. (10월)

2018

매장, 화장실 리모델링

돌집 매장, 다화원 휴게소, 다화원 화장실, 사파리조류원 화장실, 구 사무실 리모델링을 실시하였다.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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